‘삼성공화국’ 다시 불러온 무죄 판결과 특별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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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삼성공화국’ 다시 불러온 무죄 판결과 특별사면 삼성 불법합병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구상권 청구는

기사입력2025-08-18 12:13

김윤진 객원 기자 (jin@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

지난 7월 17일, 대법원이 삼성 불법합병 사건에 대해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전원의 무죄를 확정했다. 사법부가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과 다름 없는 결과다. 대한민국의 최고법원이 내리는 가장 권위 있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재벌총수를 위해 5년만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린 사법부를 과연 어느 시민이 믿을 수 있을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승계작업’ 판시 왜곡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행정소송 등 이 사건 재판부의 판결과 충돌하는 다른 판결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판결문만 보도록 하겠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회장이 뇌물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재판에서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하여 당사자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는 경우에는 묵시적 의사표시로 가능하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11도7503 판결, 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6도19659 판결, 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7도12346 판결 등 참조).

(중략)

그런데도 원심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하고, 부정한 청탁의 대상에 대한 인식은 뚜렷하고 명확하여야 한다는 근거를 들어,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없고,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위에서 본 법리에 배치된다(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8도2738 전원합의체 판결)”.

그리고 최서원(최순실)이 기소된 또 다른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승계작업이란 ‘이재용 부회장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하여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하여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가리킨다. 이것은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을 양적·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승계작업은 성질상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제도적·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 내용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승계작업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지배구조 개편 내용이 청탁 당시에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는 없고, 전 대통령의 직무와 영재센터에 제공되는 이익 사이의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승계작업이 특정되면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될 수 있다(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8도13792 전원합의체 판결).”

두 판결문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뇌물에 대한 부정한 청탁은 명확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당사자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 있다면 묵시적 의사표시로 가능하다. 그리고 이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는 ‘승계작업’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묵시적 의사표시가 있었다. 이 ‘승계작업’은 최소한의 자금으로 이 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 내용은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에 ‘승계작업’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현안이 청탁 당시에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은 뇌물의 대가로 이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승계작업’의 일환인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개입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청탁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았으니 승계작업도 부정한 청탁도 없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다. 명확한 판시다.

그런데 이번 삼성 불법합병 사건 재판부는 국정농단 판결에서는 포괄적인 승계작업에 관한 청탁만 인정했을 뿐 개별 현안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청탁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합병의 주된 목적이 승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야말로 모순이고 궤변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법리에 배치된 판단’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사법부의 적은 사법부’라고 해야 할까?

재벌 대기업 불·편법 용인하는 해로운 판결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에 해로운 이유는 대법원이 불·편법을 저지르는 재벌 대기업들에게 ‘이렇게 하면 무죄 받을 수 있다’고 이정표를 제시해준 셈이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범죄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공장 바닥에 서버를 숨겼다가 발각됐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서버에서 나온 자료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해 증거채택을 엄격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그 엄격한 잣대가 권력자들만 보호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은 법원의 탓이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다른 재벌 대기업들이 삼성을 롤모델로 삼아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왜곡된 계열사 합병을 추진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그 결과 시장질서를 훼손하고 국가와 경제적 약자들에게 피해를 입혀도 어쩔 수 없다. 합병의 진짜 목적이 그룹 지배력 강화여도, 실제로는 불필요한 ‘사업상 목적’을 명분으로 끼워넣기만 하면 정당하다고 대법원이 선례를 남겨준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재벌총수를 봐주기 위해 사법부가 사회적 후유증이 큰 해로운 판결을 남긴 셈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정부는 국민피해 회복해야

그런데 사법부에 이어 정부까지 삼성 봐주기에 열중하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국민통합’을 위한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국정농단과 삼성 불법합병에 연루되어 징역을 선고 받았던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 장충기 전 삼성전자 사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복권이 심의·의결되었다. 이들에 대한 특별사면은 윤석열 정부 때도 논의되다가 노동시민사회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었다. 이를 이재명 정부가 명분 없이 강행한 것이다. 이 사면으로 어떻게 국민통합이 된다는 말인가? 2021년 박 전 대통령, 2022년 이 회장 특별사면에 이어 이들 네 명까지 복권한 것은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에 대한 사회적 단죄를 무로 되돌리는 일이다. 사법부와 정부가 모두 삼성의 사법적 부담을 없애주려고 나서서 ‘삼성공화국’을 되살리는 모습을 보니 씁쓸함을 감추기가 어렵다. 실제로 특별사면 발표 이후 ‘삼성이 사법족쇄를 벗었다’는 제목의 기사들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아직 삼성 불법합병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이 받아 든 계산서가 있다. 합병 당시 구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이 합병으로 최대 6750억원의 손해를 입었고, 한국 정부는 구 삼성물산 해외주주들에게 소송을 당해 2300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세금으로 지불하게 되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국민 노후자금과 국고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국가적 피해를 야기한 범죄자들에게 정부가 할 일은 특별사면이 아니라, 국민연금에 대한 손해배상과 국고유출에 대한 구상권 청구다. 정부가 국민피해 회복을 위한 본연의 역할만은 끝까지 다 하리라고 기대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