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끝서 발생한 인권문제가 국제적 제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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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공급망 끝서 발생한 인권문제가 국제적 제재로 인권실사(HRDD)…평판 넘어 글로벌 거래 결정짓는 핵심요소

기사입력2025-08-11 12:3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이제는 우리 회사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협력사, 나아가 원재료 공급처까지 인권 리스크를 점검해야 합니다.”

김소리 노무법인 조율 대표노무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사중재원 등이 최근 개최한 ‘기업책임경영(RBC) 민관 합동세미나’에서 ‘인권실사(HRDD) 주요 이슈와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국내외 기업이 직면한 인권실사의 주요 쟁점과 대응 전략을 소개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공급망 전반의 인권 문제는 기업의 평판을 넘어 글로벌 거래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노무사는 “국내 기업은 이제 ESG 이슈를 단순한 경영 트렌드가 아닌 실질적인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특히 인권 문제는 조직문화나 현장의 의식 수준에 따라 심각한 위반 사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 리스크는 어디서든 발생=기업 경영에서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 HRDD)를 관리하는 것은 단순한 법적 준수를 넘어,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인권실사는 기업이 자사의 사업 활동, 공급망, 비즈니스 관계 전반에 걸쳐 인권에 미치는 실제 또는 잠재적 영향을 식별하고, 이를 예방·완화하며, 그 이행 결과를 추적·공개하고 필요한 경우 피해를 구제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을 기반으로 하며,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책임 있는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올해 4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 단일염전인 태평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에 대해 수입중단 명령을 내렸다. 태평염전의 천일염이 ‘강제노동 제품’으로 간주된 결과다. 과거 해당 염전에서 일하던 지적장애인에 대한 임금 체불과 장시간 노동 문제가 방송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김 노무사는 “형식적으로 급여는 지급됐지만, 실제로는 염주들이 통장과 체크카드를 보유하며 임금을 착복한 사례”라며, “미국에서는 이를 인권침해로 판단해 납품 중단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고가 명품 가방을 제조하는 기업이 제3국 생산공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미만 지급 문제로 이탈리아 본사까지 소송에 휘말린 경우가 있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고급 캐시미어 브랜드 ‘로로피아나’는 중국계 하청업체를 통해 불법 체류 노동자에게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시킨 정황이 드러나 이탈리아 법원의 사법관리 대상이 됐다.

김 노무사는 “이들 사례는 공급망 하단부에서 발생한 인권 문제가 국제적인 제재로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준다”며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라, 글로벌 인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권 경영 중소기업이 더 취약=김 노무사에 따르면, 인권 분야는 특성상 정량적 측정이 어렵고, 문화적·관습적 요소가 개입돼 인식 수준 자체가 낮은 경우가 많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경우 인권 문제를 ‘기업 경영과 무관한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남녀 차별, 장시간 노동, 유리천장 문제 등은 조직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단기간 개선이 어렵고, 아동 노동이나 산업안전 미비와 같은 사안은 해당 국가의 법령과 국제 기준 사이의 차이로 인해 기업이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인권실사 대응을 위해서는 ▲근로시간 ▲임금 ▲산업안전보건 등이 핵심 관리항목이며, 해당 국가의 노동법과 국제기준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김 노무사는 특히 협력사 관리를 1차 벤더에 국한하지 말고, 원재료 공급처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중소기업은 ESG에 대한 인식이나 준비가 매우 부족한 편이지만, 대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돼 있다면 공시 의무가 없더라도 인권 실사 대응체계를 갖춰야 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종별 인권 리스크 관리 필요=또 업종별로 다른 인권 리스크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예컨대 제조업과 건설업은 근로시간 초과, 산업재해, 협력사의 다단계 구조 등으로 인해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다. 실제 SPC, 삼표시멘트 등에서 반복된 산업재해는 기업 이미지와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 노무사는 ISO 45001(산업안전보건 경영시스템) 인증 외에도 ‘위험성 평가’의 실효성을 강조하며 “5인 이상 사업장의 의무사항인 위험성 평가 여부에 따라 제재 수준이나 손해배상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많다. 김 노무사는 “1차적으로는 국내법을 철저히 준수하되, 그 위에 국제노동기구(ILO), 유엔 기업과 인권 지침, OECD 가이드라인 등의 권고안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국제기준이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글로벌 거래에서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결국 인권실사는 기업의 책임경영을 평가받는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